기타 조각글 2017. 10. 12. 00:45
Salvation(구원)
사카사키 나츠메의 이야기.

* 우울함 주의.
* 각종 날조 주의.
* 플레이아데스의 밤 이전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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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사키 나츠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사흘 정도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요즘들어 바빠졌다며 전보다 자주 수업에 나오지 않아 다들 으레 그런 일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변을 감지한 것은 그와 같은 유닛에 있는 하루카와 소라였다. 소라는 이상하다며, 스승이 연락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숙해지기도 힘든 스마트폰을 쥐고 이제나 저제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에, 츠무기도 안쓰러워져 몇 번이고 연락을 해봤지만 나츠메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나츠메는 츠무기에게 답장을 그렇게 자주 보내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츠무기는 그냥 연락도 못할 정도로 바쁜 거라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다며 소라를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소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어이 스승의 집에 가보겠다며, 츠무기에게 데려가 달라고 얘기를 꺼냈다. 집 주소를 알려주고, 소라를 데려가기까지 한 것을 알면 나츠메는 분명히 화를 낼 것이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소라를 말릴 수는 없었다. 혼자 보내서 여기저기 헤메게 하느니 같이 가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츠메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돌아가.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니, 어쩌면 차갑기보다는 잠겨있었다. 지금은 너희를 볼 여유가 없어. 당분간 「점술사」의 일이 바빠 학교에는 제대로 가지 못할거야.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먼 걸음을 하게 했네. 미안해. 나츠메는 그렇게 말했다. 현관에서 조금 멀어지는 발소리에 소라는 문고리를 덜컥거리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츠무기가 소라를 감싸안았지만 소라는 스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외칠 뿐이었다. 그러나 나츠메는 더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에는 츠무기도 의문을 가졌다. 자신을 싫다며 거부해도 소라까지 이런 식으로 거부한 적은 없던 사람이었는데. 나츠메가 나올 때까지 문앞을 떠나지 않을 심산인 소라를 어르고 달래며 츠무기는 나츠메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상담해줄테니까요. 나츠메 군, 연락 정도는 해줘요.
나츠메는 잔뜩 성이 난 소라와 츠무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다가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전원을 끄고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역시 소라는 속일 수 없었다. 말을 꺼내자마자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챘다. 소라는 그렇게 뭐든지 금방 알아버리는 아이니까. 그래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 경우에는, 아오바 츠무기보다 마주하기 괴로운 상대가 바로 하루카와 소라였다. 나츠메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끝없이 빨려들어가는 어둠이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언제, 까지. 아니, 기간에 대한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다.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잊고 싶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또 다시 밀려오는 토기에 나츠메는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바짝 마른 속은 위액만을 뱉어냈다. 목구멍이 쓰리다. 입을 헹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어 가볍게 목만을 축였다. 이런 일은 마미나 대디에게도 말할 수 없다. 아니, 말을 한다 한들 해결되는 것은 그저 기분이 조금 풀리는 정도일 뿐,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근원은 자기 자신. 사카사키 나츠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여행자. 강제로 두 번이나 틀어져버린 운명의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가 진흙탕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존재. 사카사키 나츠메는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멈췄다간 문자 그대로의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서 멈추지는 못했지만, 내딛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내딛은 곳에 있는 게 정말로 발판일까? 사실은 끝도 없는 어둠인데 진흙탕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될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정말로 잘 해내고 있는 걸까? 행위에 대한 의문이 나츠메의 머릿속을 채웠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어쩌면어쩌면어쩌면. 「나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증명해 줄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까지 잘 해냈다고, 잘 해왔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저 두 사람을 계속 이끌어도 되는걸까? 내가?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때 그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는데. 「오기인」이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가장 약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형들은 하나같이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한낱 어린애의 힘으로는 막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얻은 빛을 움켜쥐고 걷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도, 이정표도 없다. 과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두 발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말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걸 나츠메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화력을 자랑하는 각종 미사일들이 아닌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하늘에 띄워줄 수 있고,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지옥보다 더한 곳에 처박을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말」해왔다. 잘 하고 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침대에 드러누운 채 나츠메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때,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누구지, 이 시간에? 부모님은 일이 있어서 오늘은 오지 않는다고 했고, 온다고 해도 열쇠가 있으니 굳이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됐다. 쾅. 아무 응답도 없자 다시 한 번 거친 소리가 났다. 이어서 덜걱거리며 손잡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 망가지겠네. 정말, 누구야. 예의도 모르는 인간이. 집에 얌전히 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속으로 온갖 불평을 하며 나츠메는 현관 앞에 섰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큰 소리가 났다. 아아, 나가요, 나가. 도대체 누구람. 인기척을 느꼈는지 점점 요란해지는 움직임에 나츠메는 짜증을 내며 문을 벌컥 열었다.

우당탕.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 저를 끌어안는 소라 덕분에 나츠메는 그대로 신발들 위로 넘어졌다. 현관의 턱에 뒤통수를 좀 부딪친 것도 같다. 나츠메가 몸을 살짝 웅크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츠메군, 괜찮아요? 츠무기를 올려다보며 나츠메는 소라를 밀어서 떼어내고는 몸을 일으키며 짜증 섞인 말을 던졌다. 도대체가, 돌아가라고 했잖아. 왜 이 시간에 다시 온 건데. 그것도 이렇게 요란하게. 진짜 무슨 생각이야? 특히 소라는 밤을 무서워하는데. 선배는 그걸 알면서도 애를 데리고 있었어? 나츠메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라가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가자고 했지만, 그냥 갈 수 없었다고.

스승의 색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소라는, 스승~이 없는 스위치는 생각할 수 없어요. 선배도 좋지만 스승이 필요합니다.
스승은 소라가 원하는 걸 언제나 이루어주었고, 소라에게 새로운 「색」을 잔뜩 보여주었네? 그러니까 소라는 스승~과 함께인 쪽이 좋아요! 사라지지 말아줘요. 소라와 선배만 두고 가버리지 말아요. 소라의 말에 나츠메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다가오는 아이에게는 당할 수 없다. 사라지지 말아달라는 그 말 한 마디가, 신기하게도 마음을 울렸다. 진흙 속으로 잠겨가면서 헛된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뻗은 손을 누군가가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아아, 그래. 나는, 나는….

나는, 이제―.

조금 더 밝은 곳을 바라봐도 괜찮은 거야. 같이 바라봐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목을 조여오던 질척거리는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츠메를 츠무기는 무릎을 살짝 굽혀 바라보았다. 어라, 나츠메군….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나츠메는 손을 뻗어 츠무기의 눈을 가렸지만, 바로 소라가 저를 끌어안고 올려다보는 바람에 다시 손을 가져와 제 얼굴을 가렸다. 소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츠메를 바라보다가 그냥 그를 꼭 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츠무기도 말없이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행복했다. 그래서, 그래서 말라버렸던 눈물 샘이라도 터진걸까? 나츠메는 두 사람에게 안긴 채 소리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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