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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Witchcraft 2018. 6. 21. 16:50

Witchcraft 01.
I dre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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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에서 돌아온 나츠메와 소라는 지친 몸을 소파에 눕히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나중에 수업에서 돌아온 청년은 그런 둘을 보다가 빙긋이 미소짓고는 가만히 담요를 덮어주고는 빈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펼쳤다. 햇살은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이었지만 어느 곳보다도 포근한 느낌에 한참 책을 읽던 청년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날은 참 오랜만에 꿈이라는 것을 꾸었다. 청년은 그다지 꿈을 잘 꾸는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꿈같은 소리만을 늘어놓는다는 소리를 듣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꿈을 꾸지 않아서 현실에서 조금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말도 해봤지만, 나츠메에게는 헛소리를 하지 말라며 빈축만 샀다. 그 꿈은, 언제라고 하는 게 좋을까. 확실히 현재는 아니었다. 현재는 아니지만 익숙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세 사람이 지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음에도 그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청년은 퍽이나 안정감을 느꼈다.

그 곳은 지금 세 사람이 학교생활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는 도서관과 어딘가 분위기가 닮아있었다. 실험도구가 있다거나, 커다란 전신거울이 있다거나, 그 거울이 천으로 덮여있다거나 하는 점이 특히 그랬다. 어째서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꿈인데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는 그리운 향기가 났다. 바싹 마른 약초를 갈아서 저울에 재어 냄비에 넣는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요즘에 쓰는 도구들이 조금 더 현대적인 것들이란 정도의 차이 뿐이었다. 나츠메가 무엇을 만드는 지 궁금했던 청년은 조심스럽게 그의 뒤로 다가갔다. 어차피 꿈일 뿐이니까 별다른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 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나츠메가 하는 말에 흠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츠무기,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어떻게 알았지? 혹시 내 모습이 보이나? 싶어서 허공에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보고 자기의 얼굴을 만지던 츠무기는 곧 나츠메의 말이 지금 꿈속에 들어온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나츠메의 말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나온 남자는, 자기 자신이었다. 아마 풀면 어깨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외알안경을 쓰고 문 뒤에서 고개를 내민 츠무기는 이번엔 뭘 만드는 거냐며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어다 나츠메의 옆에 앉았다. 나츠메는 조용히 하지 않으면 그 입에 풀을 발라버리겠다고 하면서 집중하는 중이니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이건 도대체 어떤 꿈인 걸까? 꿈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녀는 인간의 몇 배는 되는 시간을 산다고 했었지.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까? 그렇게 생각하는 데, 장면이 갑자기 바뀌었다.

눈 앞이 갑자기 밝아진 기분에 츠무기는 눈을 찌푸렸다. 빛에 익숙해질 즈음, 그는 주변의 풍경에 아연실색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책도, 나츠메의 도구들도, 그들이 함께 지냈던 공간도. 그 안에는 자기자신도 있었다. 나츠메를 품에 안은 채. 나츠메는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알 수 없는 말을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아, 아파. 죽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아프단 말이지. 뜨거워. 그러니까 내가 사람은 골라서 사귀랬잖아. 어째서 넌 그렇게 아무나 쉽게 믿고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기세로 좋아하는 건데? 최악이야. 그런 놈은 역시 보자마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츠무기는 끓는 숨을 뱉으며 그렇게 말하는 나츠메의 손을 꼭 잡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는 그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얼핏, 눈물이 보였던 것도 같다. 츠무기가 눈을 떴을 때에는 어느새 눈을 뜬 나츠메와 소라가 잠든 제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HoHo~? 선배, 슬픈 꿈을 꾸었나요?"
"네? 그걸 어떻게…."
"선배, 지금 울고 있습니다! 소라는 걱정이네~. 괜찮나요?"
"어, 어라? …저, 지금 울고 있어요?"

듣고 보니 볼이 당겨오는 느낌에 츠무기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져보았다. 축축한 느낌이 있는 게, 정말로 울어버린 모양이다. 새삼스럽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츠무기는 팔을 내저으며 이쪽을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나츠메는 그런 그의 행동에 어깨를 으쓱이곤 세수나 하고 오라며 그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시간이 지나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며 돌아온 츠무기를 보던 나츠메는 말없이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멍하니 그가 건넨 차를 받은 츠무기는 천천히 숨을 돌리며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츠메의 차는 언제 마셔도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었고, 매번 조금씩 다른 맛이 나는데도 신기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늘도 맛이 좋네요, 나츠메군의 차는. 오늘 넣은 건 뭔가요? 겨우살이?"
"…어떻게 알았어?"
"음…. 조금 전에 꾼 꿈에서, 나츠메군이 마른 겨우살이를 가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했어요."
"…꿈에서? 어떤 꿈이었는데?"
"으음, 그러니까…."

조금 뜸을 들이던 츠무기는 나츠메의 재촉에 마지못해 꿈에서 본 이야기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본 장면에서 자기가 울고 있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는 말을 끝내고 나자, 나츠메는 조금 착잡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슬쩍 눈치를 보고 있는데, 그새 가까이 다가온 나츠메는 츠무기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말한 것 같지만, 츠무기는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눈이 핑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까무룩 잠이 들었던 그가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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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chcraft 00.
Walpurgisna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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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조금 독특한 곳이었다. 연분홍 빛과 짙은 보랏빛의 하늘은 마치 물감을 잘 풀어놓은 곳 같았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은 하늘 가득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일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생물들이 가득한 곳에서 청년은 자기가 거의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소녀를 이따금씩 힐끗거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군데군데 하얀 브릿지가 섞인 외모의 소녀는 익숙한 듯 여러 사람들, 아니, 여러 존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곱슬기가 강한 금발의 숏컷을 가진 소녀가 그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가끔 그 존재들 중에는 청년을 돌아보는 이도 있었지만,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말하자 곧 어깨를 으쓱이곤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소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차치하고, 별의 흐름이나 달의 위치를 보면 이미 꽤 늦은 시각인 것 같은데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서 바로 잠들지 않으면 내일은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청년은 여전히 즐겁게 다른 존재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어…. 나츠메…. "
"뭐야, 선배.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시간이 꽤 늦은 것 같아서요."
"그래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어째서?"
"에에, 어째서냐니…. 내일도 학교에 가야죠?"
"아아…. 선배는 성실한 사람이었지. 그럼 선배 먼저 돌아가."
"네에에?"

아니, 먼저 돌아가라니. 이렇게 황당한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나츠메는 놀라서 큰 소리를 내버린 청년의 배에 주먹을 내지르고는 민폐가 아니냐며 짜증을 냈다. 민폐라기엔 이미 그 장소가 소란스러워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 같았지만, 청년은 주저앉아 나츠메에게 맞은 곳을 문지르면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애초에 여기에 온 것도 당신이 멋대로 끌고 온 것이 아니냐 따위의 말을 했다. 계속해서 구시렁대는 청년을 보던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 나츠메는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한심하게 청년을 쳐다보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금발의 소녀를 불렀다. 나츠메의 부름에 금방 달려온 소녀는 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쪼그려 앉은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HiHi~. 선배, 소라와 같이 돌아가요!"
"소라…. 같이 가주는 건가요?"
"응! 스승~이 그 정도 귀환 마법은 가르쳐 줬으니까요! 대신 선배를 데려다 주면 소라는 다시 돌아올거네~."
"우우…. 나츠메 ㄱ, 아, 아니, 나츠메 양은 몰라도 소라 양…은 수업을 제대로 들어야죠?"
"에에? 하지만 스승~도 내일은 괜찮다고 했고, 내일은 「Switch」의 일도 없잖아요?"
"후후, 지금만큼은 「그쪽」보다 「이쪽」의 일이 중요하고 말이야. 그러니 데려다주고 오렴, 소라."
"HiHi~.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스승!"

나츠메에게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고 손을 흔든 소라는 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청년을 일으켜 그의 등을 커다란 나무 근처에 있는 비석 앞으로 떠밀었다. 청년은 소라에게 등을 떠밀려 비석에 몸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몸은 다른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소라는 그의 뒤를 이어 들어가 눈을 꼭 감은채 숨을 멈추고 있는 청년의 손을 잡고는 발을 굴렀다. 소라의 도약에 동반된 힘에 딸려가며 계속 이어지던 청년의 비명은 그에게 익숙한 방에 도착하고서야 멈췄다. 후들거리는 몸으로 겨우 주저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드러누운 청년을 보던 소라는 그에게 손부채질을 잠깐 해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다시 열었다.

"소라 군…. 벌써 가는 건가요?"
"네! 오늘은 1년에 하루 뿐인 밤이고, 소라는 첫 참가라 중요하다고 스승~이 말했으니까요!"
"하하…. 어쩐지 아이돌보다 「그 쪽」을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네요, 소라 군…. 나츠메 군이야 그렇다 쳐도…."
"으응~? 그런 건 아니네~. 소라, 아이돌의 일도 반짝반짝한 색이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쪽」에도 재미있는 색이 넘쳐 흘러요! 소라는 어느 쪽도 다 좋아요!"
"네에.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아, 참, 스승~의 전언입니다! 「다음에도 호칭을 실수할 뻔 하면 입을 이삼일 못 열게 해주겠어.」라고 했네~. 그럼, 소라는 다시 가요!"

엄청난 말을 전해주고는 문 너머로 들어가버린 소라를 보던 청년은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안경을 벗어 적당히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익숙한 듯 책을 모아 자리를 만들고는 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다. 문득, 자기에게도 조금 더 소질이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한편, 문을 넘어서 돌아간 소라는 나츠메에게 곧바로 달려가 자신이 돌아온 것을 보고했다. 나츠메는 소라를 보다가 마침 잘 왔다며,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고는 그의 손에 동그란 구슬을 올려두었다. 구슬이라고는 해도 모양이 그런 것 뿐, 점액질에 싸인 무언가였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주변의 불빛에 구슬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던 소라는 딱히 짐작을 하지 못하겠는지 나츠메를 보며 그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츠메는 빙긋이 웃으며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박수를 치듯 감싸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인 소라는 나츠메의 말대로 왼 손바닥에 구슬을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내려치듯 감쌌다.

펑! 펑!

손바닥의 마찰로 구슬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소라의 머리 위로는 각양각색의 불꽃이 터져나갔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을 하늘만 쳐다보던 소라는, 곧 눈을 빛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츠메가 선사한 조금 이른 불꽃놀이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존재들도 느긋하게 불빛을 감상하며 나츠메에게 찬사를 던졌다. 몇몇 이들은 나츠메를 찾아와 구슬의 제조법을 묻기도 했다. 나츠메는 그런 그들을 테이블에 불러모아 양피지를 펼치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깃펜으로 재료와 설명들을 적어나갔다. 소라는 그런 그의 기술을 하염없이 옆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나츠메가 설명을 끝내고 양피지를 말아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양피지는 정확하게 테이블을 둘러싼 머릿수만큼 늘어나서 각자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들뜬 표정으로 저마다 양피지를 품에 안고서 파티를 즐기러 흩어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소라와 함께 과자를 몇 개 접시에 덜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그들이 앉은 테이블의 맞은 편에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성이 와서 앉았다. 나츠메는 그녀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네고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바스러지는 머랭은 솜사탕마냥 달콤했다.

"나츠메 씨의 활약, 잘 지켜보고 있답니다."

첫 인사를 그렇게 건넨 여성은 다음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츠메는 그녀를 보다가 과자를 하나 집어서 베일을 반쯤 걷어내고 그녀의 입에 물려버리고는 씨익 웃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아니, 달콤한 협박에 그녀는 눈을 접어 웃고는 말없이 과자를 베어물었다. 마녀의 과자는 언제나 달콤하다. 그렇기에 유혹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나츠메는 그녀에게 벌꿀을 넣은 홍차를 따라 건네고는 새로 과자를 하나 집어 소라의 입에 넣어주고는 그가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런 지루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만났을 때 해도 되잖아? 일년에 한 번 뿐인 연회인걸. 같이 즐기자. 「마녀들의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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