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chcraft 00.
Walpurgisnacht
--------------------------
그 곳은 조금 독특한 곳이었다. 연분홍 빛과 짙은 보랏빛의 하늘은 마치 물감을 잘 풀어놓은 곳 같았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은 하늘 가득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일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생물들이 가득한 곳에서 청년은 자기가 거의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소녀를 이따금씩 힐끗거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군데군데 하얀 브릿지가 섞인 외모의 소녀는 익숙한 듯 여러 사람들, 아니, 여러 존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곱슬기가 강한 금발의 숏컷을 가진 소녀가 그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가끔 그 존재들 중에는 청년을 돌아보는 이도 있었지만,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말하자 곧 어깨를 으쓱이곤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소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차치하고, 별의 흐름이나 달의 위치를 보면 이미 꽤 늦은 시각인 것 같은데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서 바로 잠들지 않으면 내일은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청년은 여전히 즐겁게 다른 존재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어…. 나츠메…. "
"뭐야, 선배.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시간이 꽤 늦은 것 같아서요."
"그래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어째서?"
"에에, 어째서냐니…. 내일도 학교에 가야죠?"
"아아…. 선배는 성실한 사람이었지. 그럼 선배 먼저 돌아가."
"네에에?"
아니, 먼저 돌아가라니. 이렇게 황당한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나츠메는 놀라서 큰 소리를 내버린 청년의 배에 주먹을 내지르고는 민폐가 아니냐며 짜증을 냈다. 민폐라기엔 이미 그 장소가 소란스러워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 같았지만, 청년은 주저앉아 나츠메에게 맞은 곳을 문지르면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애초에 여기에 온 것도 당신이 멋대로 끌고 온 것이 아니냐 따위의 말을 했다. 계속해서 구시렁대는 청년을 보던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 나츠메는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한심하게 청년을 쳐다보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금발의 소녀를 불렀다. 나츠메의 부름에 금방 달려온 소녀는 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쪼그려 앉은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HiHi~. 선배, 소라와 같이 돌아가요!"
"소라…. 같이 가주는 건가요?"
"응! 스승~이 그 정도 귀환 마법은 가르쳐 줬으니까요! 대신 선배를 데려다 주면 소라는 다시 돌아올거네~."
"우우…. 나츠메 ㄱ, 아, 아니, 나츠메 양은 몰라도 소라 양…은 수업을 제대로 들어야죠?"
"에에? 하지만 스승~도 내일은 괜찮다고 했고, 내일은 「Switch」의 일도 없잖아요?"
"후후, 지금만큼은 「그쪽」보다 「이쪽」의 일이 중요하고 말이야. 그러니 데려다주고 오렴, 소라."
"HiHi~.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스승!"
나츠메에게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고 손을 흔든 소라는 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청년을 일으켜 그의 등을 커다란 나무 근처에 있는 비석 앞으로 떠밀었다. 청년은 소라에게 등을 떠밀려 비석에 몸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몸은 다른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소라는 그의 뒤를 이어 들어가 눈을 꼭 감은채 숨을 멈추고 있는 청년의 손을 잡고는 발을 굴렀다. 소라의 도약에 동반된 힘에 딸려가며 계속 이어지던 청년의 비명은 그에게 익숙한 방에 도착하고서야 멈췄다. 후들거리는 몸으로 겨우 주저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드러누운 청년을 보던 소라는 그에게 손부채질을 잠깐 해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다시 열었다.
"소라 군…. 벌써 가는 건가요?"
"네! 오늘은 1년에 하루 뿐인 밤이고, 소라는 첫 참가라 중요하다고 스승~이 말했으니까요!"
"하하…. 어쩐지 아이돌보다 「그 쪽」을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네요, 소라 군…. 나츠메 군이야 그렇다 쳐도…."
"으응~? 그런 건 아니네~. 소라, 아이돌의 일도 반짝반짝한 색이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쪽」에도 재미있는 색이 넘쳐 흘러요! 소라는 어느 쪽도 다 좋아요!"
"네에.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아, 참, 스승~의 전언입니다! 「다음에도 호칭을 실수할 뻔 하면 입을 이삼일 못 열게 해주겠어.」라고 했네~. 그럼, 소라는 다시 가요!"
엄청난 말을 전해주고는 문 너머로 들어가버린 소라를 보던 청년은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안경을 벗어 적당히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익숙한 듯 책을 모아 자리를 만들고는 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다. 문득, 자기에게도 조금 더 소질이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한편, 문을 넘어서 돌아간 소라는 나츠메에게 곧바로 달려가 자신이 돌아온 것을 보고했다. 나츠메는 소라를 보다가 마침 잘 왔다며,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고는 그의 손에 동그란 구슬을 올려두었다. 구슬이라고는 해도 모양이 그런 것 뿐, 점액질에 싸인 무언가였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주변의 불빛에 구슬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던 소라는 딱히 짐작을 하지 못하겠는지 나츠메를 보며 그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츠메는 빙긋이 웃으며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박수를 치듯 감싸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인 소라는 나츠메의 말대로 왼 손바닥에 구슬을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내려치듯 감쌌다.
펑! 펑!
손바닥의 마찰로 구슬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소라의 머리 위로는 각양각색의 불꽃이 터져나갔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을 하늘만 쳐다보던 소라는, 곧 눈을 빛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츠메가 선사한 조금 이른 불꽃놀이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존재들도 느긋하게 불빛을 감상하며 나츠메에게 찬사를 던졌다. 몇몇 이들은 나츠메를 찾아와 구슬의 제조법을 묻기도 했다. 나츠메는 그런 그들을 테이블에 불러모아 양피지를 펼치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깃펜으로 재료와 설명들을 적어나갔다. 소라는 그런 그의 기술을 하염없이 옆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나츠메가 설명을 끝내고 양피지를 말아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양피지는 정확하게 테이블을 둘러싼 머릿수만큼 늘어나서 각자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들뜬 표정으로 저마다 양피지를 품에 안고서 파티를 즐기러 흩어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소라와 함께 과자를 몇 개 접시에 덜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그들이 앉은 테이블의 맞은 편에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성이 와서 앉았다. 나츠메는 그녀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네고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바스러지는 머랭은 솜사탕마냥 달콤했다.
"나츠메 씨의 활약, 잘 지켜보고 있답니다."
첫 인사를 그렇게 건넨 여성은 다음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츠메는 그녀를 보다가 과자를 하나 집어서 베일을 반쯤 걷어내고 그녀의 입에 물려버리고는 씨익 웃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아니, 달콤한 협박에 그녀는 눈을 접어 웃고는 말없이 과자를 베어물었다. 마녀의 과자는 언제나 달콤하다. 그렇기에 유혹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나츠메는 그녀에게 벌꿀을 넣은 홍차를 따라 건네고는 새로 과자를 하나 집어 소라의 입에 넣어주고는 그가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런 지루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만났을 때 해도 되잖아? 일년에 한 번 뿐인 연회인걸. 같이 즐기자. 「마녀들의 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