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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여름의 색 2017. 12. 10. 22:52
여름의 색 02.
스위치 - 요괴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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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고 해도 시골의 새벽은 차가운 법이다. 츠무기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잦은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던 걸까?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소라를 흔들어 깨우려던 츠무기는 제 위에 덮인 하오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이런 걸 걸치고 나왔더라?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 여기에서 자고 있었는지, 왜 이런 숲속의 신사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 소라와 함께 축제를 보러 갔었는데…. 잠에서 깨서 느른하게 하품을 하는 소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츠무기는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라는 기지개를 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을 들이마시자 폐를 간지럽히는 차가운 공기에 츠무기는 잘게 기침을 했다. 그런 츠무기를 보던 소라는 그가 걸치고 있던 하오리를 제대로 입으라고 하고는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집에서는 아이들이 없어졌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지, 두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졌다. 특히나 츠무기는 몸도 약한데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냐면서, 당장 씻고 누우라는 말에 츠무기는 하릴없이 그 말을 따랐다. 소라는 형의 방해를 하면 안 된다는 말에 혼자 조용히 마루에 드러누워 츠무기가 걸치고 있던 하오리를 덮고는 어제의 축제를 떠올리고 있었다. 낯설지만 따뜻한 색이 보이는 이 옷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츠무기는 축제에 갈때만 해도 분명히 하오리를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소라는 까무룩 낮잠이 들었다.

딸랑.

소라가 음색이 좋다고 해서 처마 끝에 달아둔 풍경이 울리는 소리에 소라는 멍하니 눈을 떴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풍경을 흔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 바라본 천장에는 여우 가면의 노란 눈동자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던 소라의 입을 급히 막은 여우 가면은 제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쉿, 이라고 말했다.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한 소라는 몸을 일으키면서 눈을 깜박였다. 그에게서는 자기가 덮고 있던 하오리와 같은 색이 보여서, 소라는 그가 말은 하지 않아도 그 옷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라가 덮고 있던 하오리를 가만히 들어올려서 킁킁대고 냄새를 맡던 그는 작게 혀를 차고는 마당을 향해 옷을 있는 힘껏 털어댔다. 팔랑, 팔랑. 그가 공중에 천을 휘두를 때마다 츠무기와 자신의 색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소라는 손을 뻗어서 그의 소매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여유롭게 한 걸음 물러나고는 소라를 보며 말했다.

"나를 본 건 비밀로 해줘. 누군가에게 말하면 또다시 네 기억을 지워야 하니까."
"HoHo~?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건 모두 꿈이니까, 금방 잊혀질거란다. 잘 자, 꼬마야."

자기는 꼬마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소라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인 여우 가면은 손가락을 들어 그의 이마를 가볍게 튕기고는 올때처럼 가볍게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미묘하게 현실적으로 감각이 남아있는 이마를 문지르며 소라는 가만히 여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느낌이지만,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더위에 지쳐가는 몸을 식혀주는 여름바람을 느끼며 소라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해가 산을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저녁이 다 됐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던 소라는 마루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재촉하는 목소리에 쓰레기통에 머리카락을 버리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가족 중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그건 누구의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편, 여우 가면을 쓴 소년은 그렇게 옷을 털어내고도 부족했는지 투덜거리면서 숲 속의 폭포로 향했다. 느긋하게 걸어가는 동안 그의 주변에는 온갖 요괴들이 달라붙었다. 소년은 그 상황이 익숙한 듯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고 제 갈길을 갔다. 그런 그의 등에 달라붙은 작은 네코마타는 가볍게 코를 킁킁거리더니 '나츠메'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난다며, 인간을 잡아먹고 온 거냐고 물었다. 그런 네코마타를 마치 애완묘 다루듯 턱을 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 소년은 그럴리가 없지 않느냐고, 요즘 세상에 인간들을 잡아먹었다가는 퇴치당해버릴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자 네코마타는 갈라진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그에게 볼을 부비고는 말했다.

[나츠메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겠지만, 나는 나츠메가 좋으니까 퇴치당하는 건 싫다냥.]
[그럴 일은 없어, 바보 고양이.]
[냐앗!! 바보라니, 실례자냣!!!]
[바보같은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적어도 인간들은 날 없앨 수 없어. 우리 형들과 비슷한 급의 요괴라면 모를까.]
[뭐, 그건 그렇다냥.]
[그건 그렇고, 난 지금부터 빨래를 하러 갈 생각인데. 따라올 거야?]

나츠메의 말에 네코마타는 물은 질색이라며 또 놀러오겠다고 하고는 근처의 나무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바스락, 가지의 흔들림에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무를 타고 사라지는 네코마타를 본 나츠메는 눈앞에 나타난 폭포를 보다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냉랭한 물에 가볍게 몸을 떤 나츠메는 이내 가면을 벗어 옆의 널따란 바위 위에 얹어놓고는 그대로 몸을 뒤집어 물에 머리를 끝까지 담갔다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깨까지 다시 담근 나츠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바보같이 하오리를 인간에게 빌려주는 바람에 인간의 냄새가 잔뜩 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두면 감기가 걸릴 것 같이 약한 기운이기에 빌려준 것이건만, 예의도 모르는 인간은 그걸 자기 집까지 들고갔다. 게다가 노란 머리의 인간이 그걸 이불 삼아 자고 있을 줄이야. 인간은 어차피 친해질 수 없는 종족이다. 자기들이 아니면 전부 배척해 버리니까. 그게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나츠메는 저녁놀이 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에서 나와 가볍게 물을 털어내고는 숲속으로 향하면서 양 손에 마른 나뭇가지와 약초를 잔뜩 꺾어들고는 폭포 근처로 돌아왔다. 바닥에 돌을 동그랗게 놓고는 그 안에 마른 나뭇가지를 던져넣은 나츠메는 약초에 가볍게 입김을 불어 불을 붙이고는 그것들을 그대로 나뭇가지에 얹었다. 타닥, 타닥. 마른 가지와 약초가 타들어가며 나오는 연기를 하오리에 잔뜩 맞힌 나츠메는 하오리에서 약초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만족한 듯 옷을 걸치고는 가면을 들어 뒤집어 썼다. 불이 붙었던 자리를 발로 짓이겨 흔적을 없애고 돌멩이를 호수 안으로 던져넣은 나츠메는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금 더 깊은 숲속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우리 막내 왔누~♡]
[으응, 여태 기다리고 있었어?]
[이 몸은 워낙에 무료하니 말이야. 널 기다리는 일이 제일 즐겁구나♪]

나츠메가 도착한 곳은 작은 군락이었다. 척 보기에도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조금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비밀 마을이었다. 나츠메가 마을에 가까워지자 먼저 달려나온 검은 머리카락의 여우 요괴는 그를 끌어안은 채 볼을 부벼대며 그를 반겼다. 나츠메는 다소 귀찮은 느낌으로 그의 말에 답하면서 '모두가 모여있다'는 말에 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렸다. 여우 요괴는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 어디를 갈 생각이냐고 물었지만, 나츠메는 대답은 않고 그의 손을 떼어놓은 채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은색의 실이 나츠메의 손발을 휘감았다. 아니, 휘감은 것은 실이 아니라 머리카락이었다. 나츠메는 자기 손발을 보다가 주변에 도깨비불을 불러냈고, 그러자 머리카락은 금세 풀려버렸다. 나츠메는 고개를 돌려 그 머리카락의 주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츠메의 가면과 눈이 마주친 머리카락의 주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 형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태우려고 하다니, 우리 막내는 심술쟁이네요!]
[…와타루 형.]
[흑흑…. 이 형은 그런 아이로 키운 적이 없는데 말이죠!]
[…….]
[자, 자. 와타루의 표정을 봐서라도 들어가게, 나츠메.]
[…알았어, 레이 형.]

나 참. 당하면 배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주라고 한 건 형들이면서. 나츠메는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집으로 향했다. 나츠메의 뒤를 따라 와타루와 레이가 집으로 들어섰다. 집에서는 이미 단단히 한 소리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던 이가 있어, 이를 눈치 챈 나츠메는 들어서면서도 걸음이 무거웠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너는 도대체 이 시간까지 어디서 무얼 하고 왔느냐는 잔소리가 쏟아졌다. 나츠메는 그 말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간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그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늦었다며, 요즘 세상은 험하니까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라고 말했을 것이라며 그를 다그쳤다. 그의 잔소리에 요괴는 원래 음지로 다니고 야행성인데 왜 자기는 그러면 안 되느냐고 쏘아붙인 나츠메는 답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다가 오늘은 낮에 돌아다니느라 쉬지 못했으니까 그냥 잘거라고 말하면서 침실로 향했다. 그 뒤에서는 레이와 와타루가 잔소리를 한 이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츠메는 그쪽을 돌아보다 고개를 내젓고는 가면을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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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색 01.  (0) 2017.09.17
posted by 스위스무민
:
스위치/여름의 색 2017. 9. 17. 20:12
여름의 색 01.
스위치 - 요괴 AU
=============

흔들흔들, 흔들흔들,
불어라, 바람아. 열려라, 문아.
헤메는 꽃잎에는 휘파람 새의 노래를 들려주렴.
반딧불이 길을 잃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주렴.
안녕, 안녕히.
힘든 일은 잊고 이제 편히 잠들렴.


사락, 사락. 잘 익은 주홍색의 열매가 하늘을 향해 흔들렸다. 마른 대에 용케도 붙어있던 주홍색 열매에서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밝은 빛이 하나 둘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반딧불이의 빛이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반딧불이는 주홍 열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주홍 열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돌아갈 곳을 찾아 헤매던 혼들 뿐이었으니까. 역시 와줬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인은 눈을 감았다.

"너라면 올 줄 알았어."
「……. 떠날 시간이야.」
"후후…. 많이 늙어버렸지?"
「미련이 남아있어? 인간.」
"으음…. 그렇게 불리는 것도 정이 없네. 이왕이면 이름으로 불러줘. 알고 있잖아, 내 이름?"
「글쎄.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인간의 이름은 금세 잊어버리거든. 그보다 만난 적이 있던가?」
"아하하, 너무하네."
「떠들 시간이 있으면 빨리 일어나서 따라오기나 해. 여기에 더 있으면 너는 이 장소에 묶여버릴 테니까.」
"응, 그러네."

살짝 비뚤어진 가면 밑으로 어쩐지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노인은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나며 눈 앞의 소년쯤 되어보이는 존재를 보다가 손을 뻗어 그의 가면을 바로잡아주었다. 가면을 쓴 소년은 말없이 노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곧 백귀야행이 끝나. 그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구나, 벌써 그런 때구나. 소년은 노인의 손을 놓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다정한 노래를 들었다. 꼭, 그래. 꼭, 육십 년 만에 듣는 노랫소리였다.

"여전히 네 목소리는 다정하구나."

노인의 말에 가면을 쓴 소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손에 이끌려 강가에 도착한 노인은 그가 하늘을 향해 흔드는 바스락거리는 열매의 소리를 들으면서 소년의 손을 놓았다. 안녕, 또 만나자. 기약없는 약속에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검푸른 밤하늘이 괜히 시린 기분이었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소년의 가면 아래로 물이 흘러내렸다. 이상하네, 하늘은 울고 있지 않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년은 힘껏 발을 굴러 하늘을 날았다. 유난히 별이 밝은 밤이었다.

*

흔들흔들, 흔들흔들,
불어라, 바람아. 열려라, 문아.
헤메는 꽃잎에는 휘파람 새의 노래를 들려주렴.
반딧불이 길을 잃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주렴.
안녕, 안녕히.
힘든 일은 잊고 이제 편히 잠들렴.


소년이 하는 일은 언제나 같았다. 갈 곳을 잃은 혼들을 모아서 그들을 달래주었다. 누군가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와는 또 다르게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었으면서 검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하루, 이틀, 그렇게 하던 것이 결국은 연례행사처럼 굳어졌다. 언제부턴가 마을에는 추수때가 가까워지면 강가에 반딧불이들이 그렇게 모여드는 데 그것이 장관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하나 둘씩 강가에 모이기만 하던 것이, 결국은 축제가 되었다. 누구를 기리는 지도, 무엇을 기념하는 지도 모를 축제를 소년은 싫어했다. 전에는 보는 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는데, 지금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인간들은 귀찮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

그 날도 떠들썩한 축제의 밤이었다. 다들 먹을거리며 놀 거리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떠돌고 있는 영혼을 모아 강가로 향했다. 검푸른 밤하늘의 별들 사이로 노랫소리를 따라 춤을 추듯 혼이 올라가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좋았다.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을 향해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고개를 돌렸을 때, 소년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와서 꽂혔다. 망했다. 언제부터 있던 거지? 주춤거리며 도망갈 틈을 보고 있는데, 곱슬기가 강한 노란 머리카락의 소년이 쪼르르 다가와 소년의 손을 잡았다.

"Hoho~ 방금 그건 뭔가요?"
"……."
"소라 군,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그렇게 덥썩 잡으면 안돼요."
"하지만, 이 사람 도망가려고 해서~."
"……!"
"그렇다고 해도 말이에요. 누구라도 놀랄 거예요. 혼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내가, 보여?"

새삼스러운 것을 소년은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건 몇 번이나 돌이켜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보이니까 잡았겠지.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얼핏 보기에도 그들은 아직 어렸다. 인간들은 어릴수록 자기 외의 존재를 보거나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면 어째서인지 보지 못하거나, 봐도 믿지 못하거나, 자기들과 다르다고 쫓아내버리거나 하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소년의 질문에 '소라'라고 불린 아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보입니다! 엄청!"
"……거기 파란머리, 너도?"
"파란…. 아하하. 츠무기예요. 물론 보여요. 목소리도 들리고요."
"…이상한 녀석들이네. 날 본 건 잊어줘야겠어."
"에에, 이제 막 만났는데 말인가요?"
"그래."

원래대로라면 만날 예정에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년은 가면을 만져보려는 소라의 손을 피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5엔짜리 동전을 꺼내서 실에 묶어 두 사람의 눈 앞에 들이댔다. 소년이 무얼하려나 싶어 쳐다보던 소라와 츠무기는 곧, 졸음이 밀려오는 느낌에 눈을 꿈벅거렸다. 자, 이제 잊는 거야. 잠이 들고 깨면 너희는 아무 것도 못 본 거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흐려지는 목소리와 함께 찾아온 어둠을 두 사람은 이기지 못했다. 소년은 잠이 든 둘을 가만히 보다가 들어서 가까운 신사에 옮겨다 놓고는 그대로 깊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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