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제법 오래된 시골 길을 달렸다. 창 밖을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츠무기는 이 곳이 이렇게 멀었던가?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이 먼 곳을 혼자도 아니고 어린 자신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는 상당한 각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눈에 익은 풍경이 계속해서 옆을 스쳐갔다. 츠무기가 감상에 빠진 한편, 나츠메는 혀를 차고는 차를 세우라고 말했다. 츠무기가 길 한복판이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린 나츠메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서 앞으로 날렸다. 그러자 허공에 닿은 부적에는 불이 붙었고, 그 부적은 이내 재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그럼 그렇지."
"나츠메 군, 이건...."
"결계야. 여기부터 시작인 것 같네."
"어째서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거죠? 들어오는 사람은 전부 받아들이....?! 나, 나츠메 군...!"
"선배!"
의아해하며 츠무기가 결계 근처로 다가간 순간, 츠무기의 몸은 결계 너머에서 나온 수많은 손에 잡혔다. 나츠메는 급하게 손을 뻗어 츠무기를 잡았지만, 그는 순식간에 결계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결계 안으로 함께 들어가게 된 나츠메와 소라는 곧 마을 바깥쪽의 숲에 떨어졌다. 단단한 땅에 부딪쳐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난 나츠메는 주변을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안에 들어오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츠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날아온 소라를 받아내서 가만히 땅에 세워준 나츠메는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일단 기계가 먹통이 된 건 아닌지, 작동이 되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통화는 되지 않았다.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표시를 보고 혀를 찬 나츠메는 우선은 앞으로 가보자며 희미하게 불빛이 흘러들어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는 내내 소라는 나츠메의 소맷부리를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스승~. 여기가 카쿠레자토인가요?"
"응, 그렇단다. 뭔가 보이니?"
"...굉장히 슬픈 색이 가득합니다. 소라의 마음도 슬퍼져요...."
"소라는 빙의당하기 쉬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 더 힘들겠구나. 하지만 정신차리렴. 너마저 먹혀버리면 선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 네, 소라, 힘낼게요!"
자신의 말에 제 뺨을 두어번 두드리고 주먹을 꼭 쥔 팔을 힘껏 펼친 소라를 보며 미소짓던 나츠메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에는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생존자가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은 나츠메는 이내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음을 느끼고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마을 회관이었다. 나츠메와 소라가 회관의 문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갑자기 몰린 사람들의 시선에 겁을 먹고 제 뒤로 숨은 소라의 손을 꼭 잡아준 나츠메는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여기 있는 게 전부야?"
나츠메의 질문은 회관 안에 긴 정적을 가져왔다. 처음에 나츠메와 소라를 보며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그 질문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한참 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걸어나왔다. 자기를 이 마을의 촌장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네의 말대로, 살아있는 사람은 여기 있는 이들이 전부라고 했다. 촌장의 말에 새삼스럽게 회관 안을 둘러본 나츠메는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혀를 찼다. 있는 것은 전부 어린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인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힘을 쓸만한 남자는 하나도 없느냐는 질문에 촌장은 덤덤하게 일을 할만한 남자의 절반은 죽고, 나머지 절반은 도망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건 여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자기같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 뿐이라는 말에 손을 뻗어 촌장의 멱살을 잡은 나츠메는 주변에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리자 작은 칼을 빼어들고 그의 목에 들이대곤 더이상 소란을 피우면 이 사람을 죽이겠노라고 협박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말에 경악하며 입을 다물자, 나츠메는 칼을 치우지 않은 채 질문을 바꾸겠다고 말하곤 웃었다.
"젊은 남자를 몇 명이나 신사에 바쳤지?"
"....... 그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그래. 그러니 어설프게 수작부리지 말고 말해."
"지금까지 마흔 세 명...."
"이 마을의 규모 치고는 꽤 많은데?"
흐응, 하고 작게 콧소리를 낸 나츠메는 칼을 좀 더 촌장의 목에 바짝 들이밀었다. 그러자 겁을 먹은 건지, 그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바치게 되었다며 묻지도 않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마을은 전국시대에 사람을 제물로 바쳐 안녕을 기원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중간에 깊은 우물을 파서 나무 지지대를 묻고 그 안에 사람을 묶고는 규토로 땅을 메웠다. 그것은 자신들이 모시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고, 마을은 그 신이 지켜주게 되었다고 한다. 전국시대에는 죽어가는 병사들이나 포로들을 쓰곤 했는데, 전쟁의 방법이 바뀌고,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오면서 더이상 제물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나자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병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 곳에서 크고작은 사고가 터졌으며, 마을의 존속마저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신사에서 혼을 달래고 있던 아오바 가문의 남자들이 많은 의논 끝에 대대로 집안의 장자를 바치기로 결론을 내리면서 마을은 다시 한 번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그 말을 들은 나츠메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촌장의 멱살을 잡은 손을 거칠게 놓은 뒤에 주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기적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은 전부 바보에 머저리야."
"...아무 것도 모르는 외부인이 함부로 말하지 마!"
"신에 대해서는 내가 당신들보다 더 잘 알아. 나는 언령사니까."
"...뭐라고?"
"이참에 말해주지. 수백 년 동안 요괴에게 속아온 어리석은 인간들."
"...요괴...라고?"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게 사실은 요괴였단 말이야? 아니, 누구면 어때. 이 마을을 지켜주던 건 변함이 없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요괴는 조금.... 마을 사람들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지는 가운데, 촌장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츠메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빤히 보았다. 아무래도 당신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는 말에 촌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의 가문은 원래 그 마을의 다이묘(大名)였는데, 선조가 패전하고 마을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수호신을 소환했다고 한다. 물론, 그게 신이 아닌 요괴라는 것은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밀이 되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나츠메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래서 지금까지 마을로 찾아온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아 흉흉한 소문이 돌게 만든 거냐며 투덜대고는 인주신사의 지하로 자기를 안내해 달라고 말했다. 촌장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부인에게는 알려주지 않겠다?"
"…당신은 언령사니까요. 이 마을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저기, 촌장님. 지금이 몇 년인 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2018년이야, 2018년. 다른 말로는 헤이세이 30년."
"……."
"이제 이 마을을 지켜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나츠메의 말에 촌장의 침묵은 더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나츠메의 눈에 띈 것은 한 어린아이의 몸이었다. 그 아이의 몸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무시하고 아이의 옷을 걷어본 나츠메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의 몸에 든 멍은 절대 학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시퍼렇다 못해 죽어가는 손자국은, 그것은, 너무나도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냄새가 나는 저주였다. 나츠메가 말을 잇지 못하자 그제야 입을 연 촌장은 그 아이 말고도 이미 몇 명은 온몸에 저주가 퍼져 죽어버렸다고 했다. 외부로부터 마을을 지킬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마을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대가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다. 아오바 가문의 여자가 아들을 데리고 도망간 다음부터 마을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원망섞인 말에 나츠메는 그 말을 다시는 못 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면서 소라의 손을 잡고 마을 회관을 나섰다.